– 첼로로 철학을 말한 예술가, 그리고 우리가 잊은 울림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만큼 첼로를 연주한다.”
– 요요마
🎧 이 칼럼은 요요마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 함께 읽기를 권합니다.
👉 BGM 재생하기 – Prelude in G Major
요요마(Yo-Yo Ma).
한때는 이름만으로 ‘예술’을 상징하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이름은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
첼로는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울리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그 울림조차 ‘박제된 감동’처럼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이 글은 단순한 전기나 경력 소개가 아니다.
요요마라는 예술가가 왜 특별했고,
지금 우리가 왜 다시 그를 기억해야 하는지를 묻는 기록이다.
그는 단순한 첼리스트가 아닌, 음악으로 존재를 탐구한 예술가였고,
경계 없는 대화를 이끈 ‘연결자’였다.
요요마는 누구인가
1955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요요마는 중국계 부모 아래 자랐다.
세 살에 첼로를 시작했고, 일곱 살에 이미 솔리스트로 데뷔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며 예술의 철학적 깊이를 체득했고,
그래미 어워드 18회 수상, 미국 국가예술훈장, UN 평화대사 등
모든 경력을 쌓아 올렸지만, 그는 언제나 겸손한 예술가로 남았다.
그는 장르를 넘나들었다.
탱고, 블루그래스, 중국 민속음악, 바흐, 현대 음악까지.
하지만 그의 진짜 힘은 ‘왜 이 음악을 해야 하는가’를 설명할 줄 아는 태도였다.
“음악은 잘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는 것이다.”
그가 남긴 가장 유명한 말 중 하나다.
실크로드 프로젝트 – 음악으로 국경을 넘다
1998년, 요요마는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고대 동서양을 잇던 실크로드를 상상하며,
그 길을 따라 형성된 음악과 정서를 현대의 무대에서 다시 연결하려는 시도였다.
이 프로젝트에서 요요마는 단순한 연주자가 아니었다.
그는 문화 간 대화를 이끄는 큐레이터이자, 평화의 무대 설계자였다.
한국도 이 여정에 함께했다.
장구 연주자 김동원이 실크로드 앙상블의 핵심 멤버로 활약했고,
작곡가 김지영, 강준일, 김대성 등은 이 앙상블을 위해 위촉곡을 남겼다.
2010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공연에서는 한국 민요 ‘배노래’가 재해석되어 연주되었고,
요요마는 이 곡을 “가장 강렬한 감정을 담은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한국을 잊지 않은 사람
2018년, 요요마는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며 서울을 찾는다.
무대에는 첼로 하나와 의자 하나, 그리고 바흐의 악보만이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 대신 첼로로 모든 것을 말해냈다.
그날의 연주는 정치보다 강했고, 어느 기사보다 더 오래 남았다.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한국 민요에는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후음(喉音)이 있다.
그 깊이와 무게는 음악을 넘어 삶을 느끼게 한다.”
그는 한국 전통음악을 단지 동양적 특이성으로 본 것이 아니라,
보편적 감정의 밀도로 이해했다.
왜 지금 요요마인가
우리는 요요마를 잊고 있었다.
더 빠르고, 더 자극적인 정보에 익숙해진 우리는
예술가가 남긴 태도보다, 순간의 감동만을 기억한다.
그러나 요요마는 철저하게 태도로 연주한 예술가였다.
기술로 감탄을 얻기보다, 공감으로 다가가려 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자체를 음악으로 다루려 했던 사람.
요요마를 기억한다는 것은,
예술을 다시 질문한다는 것이고,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을 되살리는 일이다.
그는 떠나지 않았다.
우리가 멈춘 것이다.
지금, 다시 그의 첼로를 들을 때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