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감탄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 요요마
🎧 요요마의 바흐 모음곡과 함께 읽기를 권합니다.
콜드플레이는 남고, 요요마는 잊힌다.
이게 지금 한국에서 예술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2025년 4월, 콜드플레이는 8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고양종합운동장에서 6회 공연,
최고가 108만 원짜리 VIP석까지 매진이었다.
“광화문 같았다”, “눈물 났다”는 감상이 피드를 채웠다.
감정은 반복되고, 그 무대는 ‘경험’으로 저장됐다.
반면, 요요마도 한국을 찾는다.
2025년 11월,
예술의전당에서 피아니스트 캐서린 스톳과 함께 리사이틀을 연다.
아르보 패르트, 드보르자크, 포레, 쇼스타코비치, 프랑크의 곡들이 연주될 예정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 그는 오고 있지만,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다
요요마는 여전히 연주한다.
음악을 멈춘 적도, 한국을 잊은 적도 없다.
하지만 한국은 그를 조용히 흘려보냈다.
그의 이름은 프로그램 북에는 남아 있어도,
대중의 대화에서는 사라졌다.
우리는 예술을 소비한다.
그리고 그 감정을 저장한다.
하지만 그 감정을 만든 예술가의 이름은 저장하지 않는다.
왜일까?
📌 콜드플레이와 요요마 – 두 개의 기억 구조
콜드플레이의 공연은
영상, 피드, 후기, 해시태그로 살아남는다.
그 감정은 공유되고, 반복되고, 다시 살아난다.
요요마의 무대는 다르다.
말 없이 시작되고, 여운은 조용히 남는다.
그의 음악은 영상보다 느리고,
태도는 밈이 되지 않는다.
결과?
요요마는 무대에는 있지만, 기억에는 없다.
📌 기억되지 않는 예술은 계보를 잇지 못한다
2025년 1월, 서울.
19세 첼리스트 한재민이 89세 지휘자 엘리아후 인발과 협연했다.
그는 세계적 매니지먼트 KD 슈미트 소속.
요요마와 같은 회사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를 “요요마의 계보”로 말하지 않았다.
그 연결은 기사에도, 해설에도 없었다.
이름은 남았지만, 철학은 단절됐다.
🎯 예술은 감동으로 남지 않는다. 태도로 이어져야 한다
요요마는 지금도 연주하고 있다.
그리고 올해도 한국에 온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이름을 ‘지난 전설’로 기억한다.
그를 잊는다는 건
그가 전하고자 했던 공감, 연결, 평화, 인내를 잊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예술이 어떤 윤리와 태도를 가졌는지를 잊는다는 것이다.
지금,
그의 첼로를 다시 들어야 할 이유는
그가 유명해서가 아니라,
그의 태도가 지금 이 사회에 가장 결핍된 감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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