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을 떠난 화가, 손끝으로 태블릿 위에 계절을 펼치다."
1. 수영장에 뛰어든 색채의 시인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를 떠올릴 때 많은 이들이 가장 먼저 기억하는 것은 찬란한 햇살 아래 수영장이다. **〈A Bigger Splash〉(1967)**는 그 대표작이자,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강렬한 한 장면으로 남는다.
물보라가 튀는 순간을 포착한 이 그림은 호크니 특유의 평면성과 강렬한 색감, 그리고 ‘시간을 잘라낸 정지화면 같은 미학’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는 캘리포니아의 자유와 빛을 사랑했고, 그 밝음은 작품 속 색채에 그대로 스며들었다.
그러나 그의 수영장은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다. 그곳에는 자기 정체성, 즉 동성애자 예술가로서의 시선과 관음적인 시점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수면 위의 잔잔함 이면에 있는 감정적 긴장감, 그것이 바로 ‘호크니의 수영장’이 단순한 인테리어 그림을 넘어서는 이유다.
2. 시선의 재구성 – 고정되지 않는 회화
호크니는 회화 속에서 언제나 ‘보는 방식’ 자체에 질문을 던졌다.
**〈Mr and Mrs Clark and Percy〉(1970–71)**는 전통적 구도를 취한 초상화처럼 보이지만, 내부 구조는 복잡하다.
주인공 부부 사이엔 묘한 거리감이 있고, 창밖 풍경과 고양이의 시선, 인물의 포즈가 모두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이는 단순한 재현을 넘는 심리적 거리와 관계의 레이어를 형성한다.
또 하나의 대표작인 **〈Pearblossom Hwy.〉(1986)**는 사진을 통해 시공간을 해체한 작품이다.
한적한 도로를 700장 이상의 사진으로 찍어 이어붙인 이 작품은 **‘한 장면은 하나의 시점이 아니라 수많은 인식의 조각들로 이루어진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호크니는 이처럼 현실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보는 대로’ 구성하며, 회화를 하나의 감각적 인식 실험으로 만들었다.
3. 손가락으로 그리는 계절 – 아이패드 시대의 회화
2009년, 이미 70세를 넘긴 나이에 호크니는 아이폰을 통해 디지털 드로잉을 시작했다.
그가 사용한 앱은 ‘Brushes’로, 손가락으로 직접 그렸다. 이 시도는 단순한 장난이 아니었다.
그는 매일 새벽 창밖 풍경, 테이블 위 꽃병, 빛이 드리운 벽을 그려 친구들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손가락은 가장 빠른 브러시”였고, “화면은 종이보다 반응이 빠르다”고 했다.
2010년부터는 아이패드로 전환, 본격적인 디지털 작업에 몰입했다.
〈The Arrival of Spring〉(2011) 시리즈는 아이패드로 그린 드로잉 중 백미로 꼽힌다.
그는 요크셔의 풍경을 매일 관찰하며, 봄이 오는 과정을 수십 점의 그림으로 기록했다.
이 시리즈는 하나하나의 그림도 아름답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계절의 흐름을 시간의 궤적으로 시각화한 작업이다.
호크니는 “기술은 나를 젊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는 붓과 물감을 놓았지만, 표현은 오히려 더 유연하고 빠르게 진화했다.
Procreate가 대중화되기 전, 그는 이미 디지털 회화의 선구자가 되어 있었다.
4. 늙지 않는 작가, 기술과 함께 젊어지다
호크니는 단순히 새로운 도구를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감각과 공간, 시선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지속해왔다.
그에게 아이패드란 그냥 ‘도구’가 아니라, 색채와 리듬을 더 빠르게 실험할 수 있는 ‘확장된 감각의 캔버스’였다.
디지털 회화가 가볍고 즉흥적인 것으로만 여겨지는 시대에, 호크니는 정반대로 디지털을 통해 더 깊은 ‘사색의 회화’를 가능하게 했다.
그는 오늘도 아이패드를 들고, 빛이 스며드는 벽을 그리고, 테이블 위의 사과를 그린다.
이 꾸준함이야말로 그를 ‘살아있는 고전’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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