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그림 속에 있고, 그 안에서 움직인다.”
– 잭슨 폴록
〈Lavender Mist (Number 1), 1950〉
처음 폴록의 그림을 보면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이게 왜 예술이지?”
붓질이 없다. 구상도 없다.
물감이 던져지고, 튀고, 엉켜 있다.
의도는 사라지고, 충돌만 남는다.
그림이라기보다는 무언가의 흔적 같다.
그런데 바로 그 흔적이 이 작가의 핵심이다.
폴록은 ‘그렸다’기보다 ‘움직였다’.
그림은 그의 몸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기록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액션 페인팅”이라는 개념은 여기서 나온다.
그림을 바라보는 전통적 방식,
즉, 앞에 서서 붓으로 선을 긋고 구도를 구성하는 행위는 여기서 무의미하다.
그는 캔버스를 바닥에 깔고, 그 위를 돌아다녔다.
붓 대신 나무 막대기, 주사기, 손을 썼다.
작업은 계획되지 않았다.
그의 그림은 충동, 중력, 신체, 감정이 함께 만든 한 편의 사건이었다.
〈Autumn Rhythm (Number 30), 1950〉
하지만 잭슨 폴록은 단지 감정적인 예술가가 아니다.
그는 “미국이 만든 최초의 예술 브랜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문화의 중심을 유럽에서 가져오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들은 ‘표현의 자유’, ‘개인의 감정’, ‘즉흥성과 독창성’을 보여줄 수 있는 예술이 필요했다.
그때 등장한 것이 바로 추상표현주의였고,
그중 가장 강렬한 얼굴이 잭슨 폴록이었다.
놀라운 건, 그를 지원한 주체 중 하나가 바로 CIA였다는 사실이다.
CIA는 문화 전쟁을 위해 추상표현주의를 전략적으로 수출했고,
**MoMA(뉴욕현대미술관)**과 협력해 폴록을 홍보했다.
폴록의 그림은 말 그대로 자유롭게 보인다.
규칙이 없고, 구상도 없고, 설명도 없다.
그러나 그 자유는 연출된 것이었고,
그 자유는 자본과 권력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는 화가였지만 동시에 냉전기 미국의 이미지 전략이었다.
말년의 폴록은 그림보다 술에 더 기대게 된다.
명성과 부, 압박과 조롱.
그리고 그를 둘러싼 "천재성"이라는 신화는
그를 집어삼킨다.
결국 그는 44세에 음주운전 사고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그림은 폭발이었고, 그의 삶은 붕괴였다.
이것만 알면 폴록 아는 척 가능!
액션 페인팅 = 그리기보다 움직이기
물감이 아니라, 몸을 던진 흔적
CIA와 MoMA가 만든 세계적 예술 전략가
미국식 ‘자유’의 시각적 브랜드
폴록은 예술이 아니라, 사건이었다
🖋 ART × LIFE | 임기자
🌐 art-life-note.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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