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정책은 있었지만, 감각은 없었다 – 진보정당과 예술의 거리
“그들은 예술을 말했지만, 느끼지는 못했다.”
예술가들은 늘 진보 정권에 기대를 걸었다.
보수 정권이 검열과 통제를 상징했다면, 진보 정권은 그래도 예술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의 문화정책을 돌아보면, 정당이 예술을 ‘사랑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문화예술계는 진보 정권의 시대에도 반복적으로 실망을 경험했다.
정책은 있었지만, 감각이 없었다.
1. 김대중 정부 – 문화는 산업, 예술은 전략
IMF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는 문화산업 육성을 국정 아젠다로 삼았다.
‘문화강국’이라는 구호 아래 방송, 게임, 애니메이션, 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가 전략적으로 지원받았다.
그러나 이때 문화는 ‘국가 경쟁력’의 일부로 취급되었고, 예술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도구로서 위치 지워졌다.
문화부는 ‘문화산업진흥원’을 만들었고, ‘문화콘텐츠산업’이라는 개념이 이 시기에 정립되었다.
이는 분명 콘텐츠 시장을 성장시켰지만, 순수예술이나 실험예술의 생태계는 상대적으로 방치되었다.
‘지원’은 있었지만, ‘이해’는 없었다.
2. 노무현 정부 – 개방과 참여, 그러나 예술은 주변에
참여정부는 열린정부, 디지털 민주주의, 커뮤니티 정치의 선두주자였다.
한류 열풍이 본격화되고, 대중문화가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한 시기였다.
그러나 그 안에서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여전히 제한적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한류를 ‘브랜드’로 이해했지만, 그 이면의 창작자 구조나 예술 노동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낮았다.
문화정책은 ‘육성’과 ‘홍보’에 집중되었고, 예술의 비판성과 자율성은 뒷전으로 밀렸다.
특히 예술정책의 기조는 전시성 행사나 지역균형 배치로 기울었고, 장기적인 창작 생태계 구축은 부족했다.
3. 문재인 정부 – 블랙리스트를 지웠지만, 인사는 감각을 드러낸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문화예술계는 큰 기대를 걸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의 반작용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블랙리스트를 사과하고, 문화예술의 자유를 약속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예술계는 또 다른 실망을 겪는다.
문화부 고위 인사와 기관장 인선에서, 전문성보다는 ‘진영 코드’가 우선시되는 경우가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창작자들은 “우리가 원한 건 코드가 아니라 감각이었다”고 말한다.
지원 예산은 늘었지만, 예술계는 점점 관료화되었다.
정책 설계자와 현장의 거리감은 여전했고, 실질적 창작 환경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4. 정당은 왜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가
결국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 모두 문화정책은 강화했지만,
그 안에 예술가가 ‘살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았다.
예술은 콘텐츠가 되었고, 전략이 되었고, 브랜드가 되었지만,
그 자체로 존중받지는 못했다.
정당의 논리 안에서 예술은 늘 주변에 위치한다.
선거철이 되면 ‘문화예술 공약’이 줄줄이 나열되지만,
그 언어에는 감각이 없다.
예술을 진심으로 아끼고 이해한 정치인이 있었는가?
감동을 줄 수 있었던 정책은 과연 몇이나 되었는가?
5. 감각이 없는 정치에는, 예술이 없다
예술은 숫자가 아니다.
예술은 곧 감각이다.
정치가 정말로 예술을 사랑하고자 한다면,
필요한 것은 예산이 아니라 언어고,
정책이 아니라 감각이다.
예술을 사랑한 적 없는 정당은 많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묻는다.
“감각 없는 정치에, 과연 예술이 자랄 수 있을까?”
ART × LIFE | 임기자
art-life-note.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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